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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흐름이 바꾸는 세계, 저출산 시대를 통찰하다

도서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
도서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

아이 대신 반려동물 유모차를 끄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한국 사회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히 국가적 위기만이 아닌, 전 지구적 현상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만큼 저출산과 고령화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흐름이다.

영국의 인구학자 폴 몰랜드(Paul Morland)는 최근 출간한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 - 10개의 숫자로 보는 인류의 미래』에서 이 같은 전 지구적 인구 변화가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깊이 있게 탐색한다. 그는 인구를 단순한 통계 수치나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와 정치, 경제, 개인의 가치관까지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인 동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표현한다.

몰랜드는 먼저 `불임의 초승달 지대(Infertile Crescent)`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오늘날의 저출산 문제를 조명한다. 이는 스페인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광범위한 유라시아 지역이 대체출산율(여성 1인당 자녀 수 2.2명)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다. 1960년대 초 싱가포르 여성들은 평균 다섯 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지만,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수치는 2명 아래로 떨어졌다. 스페인과 독일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저출산을 경험했고, 독일은 수십 년 동안 출산율이 1.5명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이민이 없었다면 독일 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접어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 책은 인구 구조가 사회의 안정성과 정치적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지도자 대다수는 40세 이하의 젊은 층이었고, 1960~70년대 서구 사회는 베이비붐 세대의 청년기 진입과 함께 대규모 시위와 반전 운동이 잇달았다. 미국의 중위 연령이 30세도 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청년층이 주도한 사회 운동은 전 세계적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68혁명, 한국의 4.19 혁명 등도 그 흐름의 일부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에서 중위 연령이 40세를 넘어서면서, 젊은 인구가 주도하던 사회의 역동성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몰랜드는 고령화가 사회 전반의 에너지를 줄이는 동시에, 전쟁 가능성과 사회 불안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20세기 초 격동기를 지나, 유럽이 비교적 안정된 시기를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인구 구조의 고령화가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화의 변화도 인구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나이트클럽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젊은 세대는 이전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며 술도 덜 마시고 성생활 빈도 역시 줄었다. 이는 단지 세대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젊은 인구 자체가 줄어들며 문화의 주도권이 중장년층으로 옮겨간 구조적 변화로 해석된다. `청년 문화`라는 개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만큼의 문화적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몰랜드는 책의 말미에서 이스라엘 사례를 통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요인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여성 1인당 자녀 수가 3명에 이르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공동체 중심의 문화와 종교적 가치가 높은 출산율을 지탱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출산율 회복을 단순히 복지 혜택이나 법적 장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결국 개인과 가족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은 영아사망률 감소, 도시화, 출산율 저하, 고령화, 인종 변화, 교육 수준 향상 등 10가지 인구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류사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조망한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위기`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전환과 사회적 재구성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