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강화도에서 성경과 달러, 쌀 등을 담은 페트병 1300개를 북한으로 띄워 보내려던 미국인 6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북 전단 등 살포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을 지시한 가운데 외국인이 서해를 통해 `대북 페트병` 살포를 시도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27일 오전 1시 6분쯤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망월돈대에서 20~50대 미국인 남성 6명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L짜리 페트병 약 1300개에 쌀, 1달러 지폐, 한국 영화가 담긴 USB, 돌돌 말린 성경 등을 넣어 바다에 띄우려 했으며, 전단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선교 목적으로 미국에서 왔다"고 진술했으며, 최근 관광 비자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안을 감시하던 군부대가 이들의 행위를 포착해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들이 페트병을 띄우려 한 망월돈대는 강화도 서쪽 끝 유적으로, 밀물 때 조류를 타고 북한 해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이들 미국인에 대해 구속 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석방했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이들의 체류 신분과 구체적인 행위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북 전단을 풍선이 아닌 페트병으로 바다에 띄우는 방식이 단속 회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기존의 헬륨 풍선 방식은 눈에 잘 띄는 반면, 페트병은 차량으로 몰래 운반 가능해 은밀한 살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트병 방식은 전단에 비해 효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항공안전법, 고압가스안전법, 재난안전법 등을 근거로 강력히 처벌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사건의 경우 풍선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안전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강화군은 지난해 11월, 북한의 대남 비방 방송과 오물 풍선 대응 조치로 강화도 전역을 재난안전법상 `위험 구역`으로 지정하고 대북 전단과 유사 행위를 금지한 상태다. 이 법 제41조에 따르면, 지자체장은 재난 발생이나 발생 우려 시 특정 행위를 금지할 수 있으며,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재난의 개념을 정치적 위협까지 확장 적용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재난안전법이 주로 자연재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다만 지자체와 수사기관의 해석이 점차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작년 11월에도 강화도 석모대교 인근에서 쌀이 든 페트병 121개를 북측으로 띄우려 한 50대 남성이 같은 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정부가 다른 법률 조항을 활용해 단속을 이어가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재는 2023년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이 강화도 검문검색을 뚫고 대량의 페트병을 반입한 경위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3일, 대북 전단을 풍선에 실어 날린 혐의로 40대 남성을 항공안전법 위반으로 체포한 이후, 경찰관 125명을 배치해 강화도 전역의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등 주요 진입로에서는 차량 검문이 실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주민과 관광객들은 과도한 단속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