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김상환 전 대법관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오영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각각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지난 4월 퇴임한 문형배, 이미선 전 재판관의 후임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두 인사 모두 진보 성향으로 분류돼 헌법재판소의 이념적 구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상환 후보자는 대전 보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 대법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뒤 현재는 제주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핵심 요직을 맡았던 이력이 있다.
오영준 후보자 역시 서울대 법대를 나와 특허법원 부장판사,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인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신 격인 우리법연구회와 민사판례연구회 활동 이력이 있는 법관이다. 두 후보자 모두 법조계에서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인사는 헌법재판소 회복을 위한 새 정부의 첫걸음"이라며 "위험 수위에 달했던 헌재 흔들기를 끝내고, 헌법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독립성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김 후보자에 대해 "헌법과 법률 이론에 해박하고,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춘 인물"이라며, 오 후보자에 대해서는 "법원 내에서도 손꼽히는 탁월한 법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 인사의 지명으로 인해 헌재의 이념적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재 헌재는 보수 2명(정형식, 조한창), 진보 2명(정계선, 마은혁), 중도 3명(김형두, 정정미, 김복형)으로 구성돼 있다. 김상환, 오영준 후보자가 임명되면 진보가 4명, 보수 2명, 중도 3명 또는 경우에 따라 진보 5명, 보수 3명, 중도 1명 구도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구성 변화가 향후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는 주요 법안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공소청 설치 법안, 정당 해산 청구안 등이 있다. 해당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헌재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진보 성향이 우세한 헌재가 위헌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상환 후보자를 소장으로 지명한 것은 향후 주요 결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담긴 전략적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헌재는 9인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이번 인사로 그 기준선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이승엽 변호사도 헌법재판관 후보군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북송금 사건을 변호한 경력이 있어 이해 충돌 논란이 제기됐고,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헌재 재판관 2명이 추가로 교체된다. 김형두 재판관의 임기는 2029년 3월, 정정미 재판관은 2029년 4월에 만료된다. 해당 지명권은 대법원장에게 있으나, 현 조희대 대법원장이 2027년 6월 정년퇴임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후임 대법원장이 지명하게 된다. 이에 따라 헌재의 진보적 재편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