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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와 기독교의 응답: 하나님의 언약과 오늘날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적 관점

미칼레 올슨 작가
미칼레 올슨 작가.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미칼레 올슨 작가의 기고글인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 이스라엘인가 아니면 교회인가?’를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올슨 작가는 The Federalist의 기고자이자 Not the Bee의 작가로, 기독교 신학과 보수 정치에 대한 해설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특히 성경적 예언과 오늘날의 지정학 사이에서 그 위치를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일부는 현대 이스라엘 정부를 고대 성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구한다. 이는 최근 터커 칼슨과 테드 크루즈 간의 격렬한 설전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유대인을 전체적으로 악마화하며 반유대주의적 태도로 치닫는다.
그러나 이 두 극단은 모두 본질을 놓치고 있다.

성경, 특히 로마서 9–11장은 명확한 통찰을 제공한다. 즉, 현대 이스라엘 정부는 성경의 이스라엘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맺으신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유대인을 향한 증오는 죄라는 것이다. 이 점을 성경적 진리와 분명한 시각으로 풀어내고 오늘의 혼란한 세상에 적용해보자.

현대 국가는 성경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에 세워진 세속 국가이며 정치적으로 복잡한 현실을 지닌다. 이는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나 구약의 언약 공동체가 아니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직접 맺은 언약으로 정의되며, 성전과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하여 메시아를 예표했다.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그분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히브리서 8:13).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는 그 땅과 유대 민족과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동일한 신학적 무게를 지니진 않는다.

로마서 9–11장은 이 점에서 결정적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이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고심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로마서 9장 6절에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눈에 비친 참된 이스라엘은 혈통이나 국가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 정의된다.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는 다른 모든 정부처럼 인간적인 제도이며, 결함이 있고 책임을 져야 하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이 창세기 12장 3절(“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을 인용하며 무조건적인 지지를 주장하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6절과 29절에서 이 약속이 결국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 있는 영적 자손들에게 향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의 지정학 안에서 이 구분은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존재권이나 안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든 정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나 군사 작전, 미국과의 관계, 정보기관, 코로나 정책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정직한 태도라면 전적으로 타당하다. 어떤 정부에든 맹목적인 충성은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보다 국가를 높이는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미가 6장 8절의 정의와 공의에 비추어 어떤 국가든 평가해야 한다.

하나님의 유대인에 대한 언약은 여전하다

현대 이스라엘이 성경적 이스라엘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유대인과 맺으신 언약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로마서 11장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 11:29). 바울은 이스라엘이 복음에 대해 부분적으로 완고해졌지만,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래의 가지인 유대인들을 향해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로마서 11:17–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믿는 유대인들과 함께 이방인을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접붙이셨다.

이 진리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을 반박한다. 이는 바울의 분명한 가르침(로마서 11:1–2)을 무시하고, 구속 역사에서 유대인의 독특한 역할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반유대주의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는다. 예수님도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요한복음 4:22)고 하셨고, 사도들 또한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은 신앙의 뿌리를 모독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6절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선언하며 복음의 보편성과 뿌리를 동시에 강조한다.

반유대주의는 악이다

반유대주의는 사회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영적 반역이다. 로마서 11:18은 이방인들이 유대인 가지를 향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역사는 중세 유대인 박해에서부터 현대의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주의로 점철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정부 비판을 가장하여 유대인 전체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고 있으며, 이는 사탄적이다. 시편 83편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들을 해하려는 자들을 탄식하며, 스가랴 2장 8절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눈동자”라고 부른다.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2025년 현재, 반유대주의는 세계적인 위기다. 유럽에서는 유대 공동체가 공격당하고 있으며, 미국 내 대학가와 온라인에서는 이스라엘 비판이 반유대주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유대인에 대한 악의적 태도가 관찰된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되, 민족 전체를 혐오하는 것은 죄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하셨다(마태복음 5:44). 하물며 구원을 가져온 민족을 향해선 어떠해야 하는가?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을 향해 “그들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노라”고 할 만큼 깊은 사랑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이 사랑은 오늘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대체된 것이 아닌 접붙임 받은 자들

로마서 11장 17–24절은 강력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방인은 들감람나무 가지로서, 하나님 언약의 나무에 접붙여진 존재이며, 믿는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이는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우리는 유대인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은혜를 입은 존재다.

정치적으로도 이 진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중동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분별력 있게 발언해야 하며, 이스라엘의 존재권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존엄성도 지켜야 한다. 양측 모두 고통받고 있으며, 단순히 “이스라엘 편” 또는 “반이스라엘” 식의 이분법은 비현실적이다. 이사야 19장 23–25절은 언젠가 이집트, 앗수르,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 올 것이라 예언한다. 하나님께서 화해를 꿈꾸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교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현대 이스라엘 정부를 성경의 이스라엘로 동일시하는 생각을 거부하라. 그것은 신정 국가가 아니라 현대의 국가다. 비판할 점이 있다면 정직하게 비판하라. 둘째,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다는 점을 인정하라. 로마서 11장 28절은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셋째,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중동의 혼란은 하나님의 샬롬을 간절히 부르고 있다.

부족한 사랑과 증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사랑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접붙여진 자들이지, 그 주인이 아니다. 유대 민족을 존중하고, 정부를 지혜롭게 평가하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마침내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자.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