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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위, 부처 업무보고에 초강수… "태업" 발언까지

 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정치행정분과 검찰청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정치행정분과 검찰청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설계를 총괄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사흘에 걸친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마친 가운데, 공직사회를 향한 날선 비판과 경고성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으며 강도 높은 기강잡기에 나섰다. 특히 기획재정부를 향해 "태업"이라는 직설적 표현까지 사용하며 충돌의 수위를 높였고, 검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는 아예 중단시켰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치행정분과 검찰청 업무보고는 시작 30분 만에 중단됐다. 수사·기소권 분리 등 대통령 공약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공약 이행 절차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이어진 방송통신위원회의 보고도 유사한 이유로 중단되었다. 국정기획위가 보고 도중 이를 전면 중단시킨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 공약의 핵심 내용이 누락됐고, 형식적 절차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통위에 대해서도 "공약 이행 계획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해당 분과에서 보완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진행된 기획재정부 등 14개 부처의 업무보고에서도 국정기획위는 "실망이다", "구태의연한 과제 나열", "태업이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이례적으로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조 대변인은 “공약 분석도, 반영도 부족하고 내용이 없다”며 “거취 문제로 인해 업무를 못 한다는 것은 사실상 태업”이라고 강조했다.

정권 인수위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정기획위를 통해 공직사회의 긴장을 조기에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는 “이 문제는 단순히 공무원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전 정권과 최근 내란 사태를 거치며 공직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조 대변인의 "윤석열 정부 3년과 내란 사태를 거치며 공직사회가 무너졌다"는 발언,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의 “지난 3년간 흐트러졌던 정책 기조를 바로잡겠다”는 언급은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특히 기획재정부를 겨냥한 "태업" 발언은 조직개편을 둘러싼 혼선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 재정 역할" 기조와 기재부 내 "재정 건전성 우선" 관행이 충돌한 결과로 분석된다. 정권 초부터 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려는 국정기획위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고강도 접근법에 대해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재부의 한 실무 과장은 “국정과제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서 방향을 잡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을 태업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하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과장은 “조직개편안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적 개편 과제를 넣기 어렵다”며 “공개적 비판은 조직에 지나친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한 경제 부처 서기관은 “공약집에도 구체적 내용이 부족한데, 이를 두고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하는 건 과도한 책임 전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서기관은 “업무보고는 보통 정책 방향을 공유하는 자리인데, 초반부터 완성형 로드맵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전임 정부와 비교해 명확한 피드백이 있어 오히려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농식품부의 한 과장은 “전 정부에선 피드백이 모호했지만, 이번엔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국장은 “질타가 있었으면 더 잘 준비하면 된다”며 “현실과 기대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의 한 과장급 관계자는 “공약 반영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국정기획위가 국정과제 확정 전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군기를 잡는 수순일 뿐,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기획위의 강경한 기조는 공직사회 내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초기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하고 관료사회의 긴장을 유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일방적인 책임만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질적인 정책 실행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일방적 질책보다는 정책 목표에 대한 명확한 소통과 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