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류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며 북미 정상회담 시나리오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최종현학술원은 12일, 북미 정상회담 7주년을 기념해 미국 허드슨연구소와 공동으로 `협상, 교착, 그리고 억제: 북미 외교 재개를 위한 시나리오` 보고서와 정책 제언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북·중·러 간 전략적 협력,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가능성과 이재명 정부의 등장 등 최근 급변하는 외교 안보 환경을 바탕으로 북미 외교 재개 가능성을 여섯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한미 양국의 외교 및 안보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했다.
프랭크 아움 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대북 제재 완화(섬유, 해산물, 노동력, 석탄 등)를 맞바꾸는 형태의 `스몰딜`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의 협상력 약화와 함께 북한에 대한 양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북측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중단, 미국의 연합군사훈련 축소 및 전략자산 전개 감축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니 타운 미국 스팀슨센터 산하 38노스 국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외교 관계 수립이 북미 협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열쇠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 체제의 안정성과 북중·북러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키스 루스 전미북한위원회(NCNK) 사무국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개인적 친분을 외교 자산으로 활용해, 분기마다 고위급 회담을 정례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 재개, 나아가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과 외교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더그 밴도우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미국의 비핵화 목표를 현실화된 수준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법보다 군비통제, 억제력 유지, 위기관리 체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핀 나랑 MIT 교수는 무리한 외교 재개 시도가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자칫 한미동맹의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제재 해제에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 외교보다는 북핵 억지력 강화를 우선시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나랑 교수는 핵추진 순항미사일(SLCM-N)의 한반도 전진 배치 등을 구체적인 대응책으로 제안하며, 이재명 정부에는 확장억제에 대한 분명한 공개 지지를 요청했다.
한국 측 전문가들도 미국의 대북 협상에서 한국의 이해관계가 배제되어선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보고서를 대표 집필한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 대 행동 방식의 실질 합의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은 미국과 사전 협의를 통해 협상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동맹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과 철저한 사전 조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고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협상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북한의 과도한 요구에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 실장은 북미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미 간 장기 전략 목표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명확한 레드라인 설정, 북한의 합의 불이행 시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상응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주한미군 감축은 협상 카드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