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에 집중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병력 감축이 한반도 방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북한에 대한 억제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CSIS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상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감축 보도를 부인했으나, 국방부와 군 당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차 석좌는 1950년대부터 이어진 주한미군 역사를 언급하며, 병력 감축이나 철수 논의는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주한미군 규모는 약 2만3000명 수준이며, 4500명이 감축될 경우 사상 처음으로 2만 명 이하로 내려가게 된다.
차 석좌는 감축이 방위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4500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한국의 방어 능력을 본질적으로 해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력 충돌 발생 시 주력은 유능한 한국군이 맡게 되며, 미국은 주로 공군 지원과 위성 정찰, 정보 수집 등을 통해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미국은 여전히 약 2만 명의 병력을 한반도에 유지할 예정이며, 이는 북한에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 의지를 전달하는 데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억제력 측면에서는 보다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차 석좌는 "억제력의 핵심은 단순한 군사력뿐만 아니라, 적들이 미국의 방위 공약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중국과의 교역이 회복되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며, "이러한 시점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보다 대만과 1도련선(오키나와~대만)의 전략적 방어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군사적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차 석좌는 "트럼프 1기 당시 북한의 도발 빈도가 가장 높았고, 2기에도 상당했다"며 "이 같은 전례를 고려할 때, 감축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오히려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주한미군 감축설은 지난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로 처음 제기됐다. WSJ는 미국 국방부가 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4500명을 괌 등 다른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국방부는 이튿날 해당 보도를 부인했으나, 이후 당국자들은 감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발언을 이어가며 논란은 계속됐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27일 한미연구소(ICAS)와의 화상 대담에서 감축 논의에 대해 직접 들은 바는 없다고 밝혔으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또한 29일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주한미군이 단순히 북한 억제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 대응에도 기여해야 하며, 이런 전략 조정 속에서 감축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아시아 전략의 무게중심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단순한 추측을 넘어 실질적인 외교·안보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