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주한미군 재배치 가능성과 관련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동맹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한미군 전력 재조정이 논의되더라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30일 오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리스 전 대사는 “주한미군 전력을 재편한다는 것이 72년간 유지돼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틀 안에서, 한국과의 약속을 해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 자체가 한국 방위에 어떤 악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조약의 의무에 충실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주한미군 숫자와 관련해 “현재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북한이 도발 시 인도태평양 지역과 미국 본토, 일본 오키나와에서 추가 병력이 지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대응은 군사적 재배치가 단지 감축이나 철수 개념이 아니라, 동맹의 방어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그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위기를 고립된 사안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대만,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도전 과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한국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유럽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맥락에서의 군사적 결정은 보다 넓은 안보 구상 속에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의 안보 역할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일본은 패권 경쟁에 참여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중국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패권을 노리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라며, 동아시아 안보에서 중국을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해리스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2018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번에도 내가 틀리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미 간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 “협상할 사안이 많은 만큼 인센티브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을 언급하며, “당시 김 위원장이 더 나은 삶에 대한 비전을 검토하다가 스스로 협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비전은 여전히 협상 카드로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다시 대화의 장에 나설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결국 중요한 건 북한이 주민들에게 나은 삶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반도에도 전쟁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주한미군 재편 논의의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안 된다”며 “전체적 안보 전략 속에서 주한미군 재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만 5개의 양자 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가벼운 약속이 아님을 강조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조건부 전환에 합의한 바 있으며, 전작권 전환은 시간보다는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30개가 넘는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며, 현재 2025년 기준으로 모든 조건이 달성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조건이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중국이 서해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항행금지 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과 관련해 해리스 전 대사는 “2001년 한국과 중국은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합의한 바 있지만, 최근 중국의 행동은 명백한 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되며,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