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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선을 원해도 죄를 반복하는 이유 | 장재형 목사

장재형목사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에도,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 앞에서 시샘이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8권에서 새로운 의지와 오래된 의지가 자기 안에서 다투는 고통을 기록했습니다. 장재형목사(미국 Olivet University 설립)의 로마서 7장 7~25절 설교는 선을 원하면서도 죄를 되풀이하는 사람의 곤고함을 다룹니다. 바울은 그 싸움의 한복판에서 자신을 건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잘못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삶은 그 깨달음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 간격이 커지면 계명이 너무 엄격하다고 여기거나, 자신에게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선함과 죄의 힘을 구별하면서 이 막막함을 설명합니다. 죄를 정확히 아는 일이 어떻게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되고, 그 기도가 순종으로 이어지는지 살피는 것이 이 말씀을 읽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율법이 밝히는 마음속 탐심

바울은 율법이 죄인가 하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나서 오히려 내 안의 죄가 더 선명해졌다면, 명령 자체가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 죄를 드러내는 기준과 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혼동하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을 탓하게 됩니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이 차이를 보여 줍니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으니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못마땅해하는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건넨 축하와 속으로 품은 시샘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눈에 보이는 행동을 넘어 욕망의 방향을 비추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 감추어진 탐심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죄는 바로 그 선한 계명을 이용합니다. 설교가 함께 살피는 창세기 3장에서 뱀은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생명을 보호하는 명령이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제한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고, 욕망을 따르는 선택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부추깁니다.

우리도 욕망을 불편하게 하는 말씀을 만날 때 기준을 조금 낮추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밀어낸다고 탐심까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설교는 율법을 거울에 비유합니다. 거울을 치우면 얼굴의 얼룩이 보이지 않을 뿐 그대로 남듯, 잘못을 지적하는 말씀을 피하면 자신을 살필 기회도 놓칩니다. 불편한 깨달음에는 감추어 두었던 죄를 정직하게 대면하게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선을 원하는데도 같은 죄를 반복하는 이유

그렇다면 잘못을 알면서도 왜 같은 자리에서 넘어질까요? 선을 원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동의하는 마음과 익숙한 욕망을 따르는 행동 사이에는 실제 갈등이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의 이 고백을 구원받은 성도가 죄와 싸우며 거룩함을 배워 가는 성화의 과정으로 읽습니다.

남을 시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남보다 앞서야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욕망은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비교를 멈추겠다는 결심은 진실할 수 있지만, 그 결심만으로 욕망의 뿌리까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인간이 선을 아는 능력과 그 선을 온전히 행하는 능력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율법으로 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때 자기 안에 거하는 죄를 말하는 바울의 표현을 책임 회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죄의 힘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한 선택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동시에 잘못한 행동 하나로 자신의 존재 전체를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무엇을 탐했고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필 때, 막연한 자기혐오에 머물던 시선이 돌이켜야 할 삶의 방향을 찾게 됩니다.

이런 정직함은 신앙을 포장하려는 마음도 돌아보게 합니다. 죄를 인정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 변명을 쌓을수록,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는 모순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 우리도 잘못을 가리는 데 쓰던 힘을 회개하고 도움을 구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곤고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근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 탄식에서 귀 기울일 말은 ‘누가’입니다. 바울의 시선은 자기 안에서 더 강한 결심을 찾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을 건지실 분께 향합니다. 율법이 드러낸 죄와 죽음의 문제 앞에서, 그는 구원의 손길을 절박하게 구합니다.

곧이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 사이에 바울이 모든 죄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감사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죄를 담당하시고 구원을 이루셨다는 사실입니다. 곤고함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건지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관계를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와 아직 자라 가야 할 성화의 긴장으로 설명합니다.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에게도 변화되어야 할 욕망과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순종을 배웁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현실과 이미 베풀어진 구원을 함께 바라볼 때, 실패를 숨기거나 신앙을 포기하는 대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아뢸 수 있습니다.

용서의 은혜를 말하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되지는 않을까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감사에는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을 알기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욕망을 계속 품고 살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용서받았다는 확신은 잘못을 숨길 이유를 줄입니다. 순종의 동기도 구원받을 자격을 증명하려는 불안에서 이미 받은 사랑에 응답하는 감사로 바뀌어 갑니다.

회개가 오늘의 선택을 바꿀 때

이 말씀을 일상에 가져오면 기도의 내용부터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의 좋은 소식이 불편했던 날, 자신이 왜 그 소식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칭찬받고 싶었던 욕구나 뒤처질까 두려웠던 마음을 돌아보되, 그것으로 시샘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탐심을 고백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상대의 기쁨을 깎아내리던 말과 행동을 멈추는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말씀 묵상도 누가 더 잘못했는지 가려내는 일에서 자신의 동기를 살피는 일로 깊어집니다. 계명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배울수록, 순종이 나와 이웃을 지키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잘못을 고백한 다음에도 비교를 부추기는 선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의지하는 기도와 실제 생활에서 욕망을 경계하는 태도는 함께 가야 합니다.

이 과정이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믿을 만한 신앙의 동료에게 기도와 권면을 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죄를 분명히 말하면서도 회개하는 사람이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잘못을 감춰야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서는 솔직한 고백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순종을 격려하는 관계는 혼자 되풀이하던 싸움을 지속해서 다룰 수 있게 돕습니다.

성화에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같은 유혹을 다시 만났다고 해서 지나온 기도와 순종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를 더 빨리 인정하고, 변명을 줄이며, 도움을 구하는 태도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하루의 결과만으로 자신을 판정하기보다 오늘 무엇을 돌이키고 누구를 의지할지 살피는 일이 믿음의 걸음을 이어 줍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이 내일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시샘을 감추느라 애쓰던 사람에게는 이제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할 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남의 기쁨을 내 실패의 증거로 받아들이던 습관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좋은 소식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축하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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