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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광야에서 배우는 믿음의 겸손

짙은 안개가 산과 골짜기를 삼킨 자리, 한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높은 바위 위에 선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불러오는 이 장면은 '서 있음'과 '길을 앎'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는 고린도전서 10장을 통해 바로 그 착각을 비춘다. 이미 섰다고 믿는 순간, 믿음은 오히려 넘어짐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세례를 받았고 성찬에 참여했으며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영적 성숙의 증거처럼 여겼다. 그러나 바울은 그 확신을 칭찬하기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건넨다. 이 경고는 자신을 돌아보고 선조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요청이다. 신앙의 위험은 아무것도 모를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안다고 생각할 때 더 조용히 가까워진다.

안개 위에 선 믿음, 넘어짐을 보지 못하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과거의 역사로만 남겨 두지 않는다.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났으며,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경험한 백성의 이야기를 고린도 교회 앞에 다시 펼쳐 놓는다. 그들은 놀라운 은혜의 현장에 있었고,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공급받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광야에서 무너졌다는 사실은 영적 특권과 신령한 경험이 곧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역사를 오늘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로 읽는다. 거울은 남의 흠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드러내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광야의 실패를 읽는 일은 오래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평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조급함과 불신, 교만과 원망이 지금 내 마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나는지를 살피는 성경 묵상이 되어야 한다.

은혜를 경험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오늘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받은 것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순간, 은혜는 감사의 근거가 아니라 자만의 재료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의 두 축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는 마침내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삶의 방향으로 이어진다.

광야의 거울에 비친 은혜의 망각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것은 한 번의 실수만이 아니었다. 우상 숭배와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태도와 원망이 서로 얽혀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으려는 조급함은 우상을 만들었고, 욕망에 끌린 타락은 공동체를 상하게 했다. 하나님의 때와 섭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그분을 시험했고, 은혜를 잊은 자리에는 감사 대신 불평이 자리 잡았다.

금송아지는 모세를 기다리지 못한 조급함과 불신이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이 설교는 그 우상이 오늘의 돈과 성공, 명예를 향한 숭배와도 맞닿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음행은 단지 개인의 육체적 일탈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우상 숭배와 결합하여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광야의 네 가지 실패는 서로 분리된 목록이 아니라, 은혜를 잊은 마음이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흐름이다.

이 설교가 특히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원망의 뿌리다. 원망은 단순히 기분이 상한 상태가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영적 망각이다.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고도 부족한 것만 바라볼 때 마음은 점점 강퍅해진다. 받은 은혜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현재의 결핍은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작아진다.

성경이 광야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세운다. 과거의 실패는 수치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길을 바로잡는 말씀의 빛이 된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사건과 구절을 많이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와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지식적 우월감이 보여주듯, 말씀을 많이 안다는 사실만으로 성숙을 증명할 수는 없다. 반면교사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익숙한 본문 앞에서도 자신이 놓친 경고를 다시 듣고, 굳어진 마음이 없는지 살핀다. 많이 배운 신앙일수록 더 겸손하게 책망을 받아들여야 한다. 말씀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착각을 깨뜨리고, 오늘도 바르게 되어야 할 사람으로 우리를 세운다.

굳어진 마음을 녹이는 감사와 온유

광야의 교훈은 안식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히브리서 3장과 4장, 그리고 시편 95편이 상기시키듯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면 약속된 안식 앞에서 멈출 수 있다. 그들에게 약속의 땅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불신과 원망은 그 길을 막았다. 반대로 감사는 지나온 길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고, 온유함은 앞으로의 길을 그분께 맡기게 한다.

장재형 목사는 감사와 온유를 막연한 성품의 아름다움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지켜야 할 믿음의 태도이며, 공동체를 세우는 실제적인 힘이다. 모세조차 백성의 거듭된 원망 앞에서 반석을 두 번 치는 실수를 범했다는 대목은 책임 있는 위치에 선 사람일수록 더 깊은 인내와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지도자와 교사, 부모가 먼저 광야의 거울 앞에 서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험이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을 허락하시고 피할 길도 내신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시험의 한가운데서 가능한 응답은 원망만이 아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 가운데 참으며, 기도에 힘쓰는 길이 여전히 열려 있다.

영적 성숙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자기 확신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는 겸손이다. 자신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마음은 피할 길을 보지 못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마음은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기다릴 수 있다. 감사는 현실을 미화하는 감정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인도하심이 중단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믿음이다. 온유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섭리와 때를 신뢰하는 순종으로 드러난다.

이 말씀은 가정과 교회, 학교와 교육기관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교육의 목적이 지식의 전달에만 머문다면 광야의 역사는 오래된 정보로 남지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때 그 역사는 살아 있는 교훈이 된다. 무엇을 새로 세우고 사역을 넓혀 갈 때에도 출발점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어야 한다.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는 미래를 자랑으로 맞이하지 않고, 감사와 소망으로 받아들인다.

일상의 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묻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광야의 실패와 분리된 아름다운 표어가 아니다. 우상과 욕망, 시험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길에서 돌아서서, 일상의 가장 작은 행위까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라는 요청이다. 영광을 위한 삶은 특별한 순간에만 시작되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평범한 시간,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방식에서 이미 그 방향이 드러난다.

복음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숙을 과시하기보다 오늘도 배워야 할 말씀 앞에 선다.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하며, 새로운 사역과 교육의 자리에서도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먼저 기억한다. 그렇게 감사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부드러워진 마음이 순종을 낳으며, 순종은 마침내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향하게 한다.

이 방향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선택에서 분명해진다. 원망이 입술에 오르려 할 때 지나온 은혜를 기억하고, 조급함이 마음을 몰아갈 때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스스로 옳다고 여길 때 말씀의 책망 앞에 다시 서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자신을 드러내는 영적 과시와 반대편에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은 결국 내가 얼마나 높이 섰는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자리에서 누구의 은혜로 서 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

광야는 길이 없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말씀은 그곳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다시 방향을 찾는 자리로 바꾼다. 오늘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이미 섰다는 확신인가, 아니면 넘어질 수 있음을 아는 겸손인가. 내 입술에 남아 있는 것은 원망인가 감사인가, 내 마음을 이끄는 것은 조급함인가 신뢰인가.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물 때, 우리는 비로소 안개 너머의 길보다 먼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된다.

장재형 박사는 현장 선교와 디지털 미디어 사역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해 왔으며, 그 사역의 열매로 지상명령에 헌신하는 많은 이들이 세워졌다. 이러한 선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올리벳은 처음에 선교사 훈련을 위한 작은 교회 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보다 체계적인 신학 교육과 선교 인재 양성을 위해 2000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 올리벳신학대학 및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가 성장하면서 장 박사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Olivet University를 공식 설립했다. 올리벳은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신학을 중심으로 음악, 저널리즘, 예술디자인, 기술 분야까지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윌리엄 와그너 박사를 비롯한 교수진을 영입하며 교육 역량을 강화했고, 2005년에는 옛 UC 버클리 다운타운 익스텐션 캠퍼스로 이전해 대학으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2006년 장 박사는 선교 사역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총장직을 데이비드 제임스 랜돌프 박사에게 이양하고, 국제총장으로서 세계 선교 사역을 이끌었다. 이후 Olivet University는 2009년 기관 인증을 받았으며, 언어교육대학과 경영대학을 추가하고 학위 과정과 국제 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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