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정의는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게 아니다. 은혜란 내 결함을 보완해 줄 온전한 상태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내 결함은 자신과 타인을 넘어 지구에까지 상처를 입히지만, 그분의 은혜가 있기에 내 망가진 모습이 최종 결말은 아니다. 내 이기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치부까지도 아름답게 변화시키신다. 은혜란 하나님이 인간을 흠 많은 존재로 지어 놓고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실패에 잔뜩 피해자 행세를 하다가 영웅처럼 끼어들어 이렇게 선심을 쓰는 게 아니다. “괜찮아, 내가 큰맘 먹고 용서해 주지.” 은혜란 하나님의 이런 말씀과 같다. “나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너희 죄가 너희를 최종 규정하게 둘 수 없다. 나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이다.”
나디아 볼즈웨버 – 여자목사
아이의 첫 열성경련을 겪고 나서야,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아이의 보드라운 살갗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동그란 눈을 바라보며 눈맞춤 할 수 있다는 것, 도란도란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어리광을 피우며 나를 귀찮게 구는 것, 모두 아이가 살아있어 가능한 기적이었다.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선생님은 인형을 수건으로 감싸며 진짜 아기를 대하듯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작고 여린 아이가요, 힘이 없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신기해요. 아이를 안고 있으면요, 힘이 생겨요. 살아갈 힘이요. 여기 계신 분들도 느낄 때가 올 거예요. 사는 게, 아이를 키우는 게, 어렵고 힘겹다가도 아이를 안으면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는 것을요. 그게 생명의 힘이랍니다.”
신동재 - 가장 고단하고 가장 빛나는 시간
옥한흠은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이 먼저 변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복음과 영혼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비전이 있었으며, 그 영향으로 대학생들이 변했고, 후에는 성도들의 변화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공동체적으로도 나타나 대학부나 교회의 영적 체질도 바뀌는 것을 그는 실제적으로 체험했다. 제자훈련을 통해 옥한흠 자신부터 시작된 변화는 그의 목회 사역을 참된 변화의 장으로 만들어 나갔다. 이런 면에서 옥한흠은 우리에게, 참 성도이자 제자는 어떻게 살아가며 사역할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한 사람이자 목회자였고 제자훈련에 생애를 다 바친 옥한흠의 인간성은 솔직하고 투명했다. 이러한 면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서로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면 끝까지 교제와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래서 그의 첫 제자들에게 비친 첫인상은 “믿을 만하고 진실한 맏형” 같은 느낌이었다. 옥한흠의 대표적인 특성을 “신실信實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대접받는 것을 싫어했고, 그 어떤 과시나 허세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박응규 – 옥한흠 평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