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6년간 유지돼 온 공무원의 ‘복종 의무’ 규정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법률에 명확히 담는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는 25일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공직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문화 개선을 위한 제도 정비에 본격 나섰다.
개정안의 핵심은 ‘복종의 의무’ 조항 삭제다. 대신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규정이 변경되며, 공무원은 상관의 지휘·감독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위법한 지시를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공무원이 합법성과 책임성을 기준으로 행정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은 “복종 의무는 단순히 법률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문화 전반에 스며든 관행의 문제였다”며 “대법원 판례상 위법 명령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은 이미 존재하지만 이를 법률에 명확히 반영해야 실제 조직문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이행을 거부한 공무원에게 불이익 처분을 금지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인사처 중앙징계위원회는 지금까지 ‘복종 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위법·부당한 지시’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시행령과 복무규정 개정을 병행할 계획이다. 박 차장은 “법 개정 취지를 충실히 담아 후속 규정을 정비하고, 공직자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과 홍보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성실 의무’는 ‘법령 준수 및 성실 의무’로 개정돼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번 개정안에는 공무원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제도 개편도 다수 포함됐다. 우선 육아휴직 대상 자녀 기준이 기존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에서 만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로 확대된다.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둔 공무원도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또한 ‘난임 휴직’이 새롭게 신설된다. 그동안 공무원이 난임 치료를 위해 휴직을 쓰려면 질병 휴직을 이용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별도의 난임 휴직 제도를 통해 신청 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용권자가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는 난임 치료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겪던 제도적 불편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다.
공직 내 성범죄 대응도 대폭 강화된다. 스토킹, 음란물 유포 등 비위행위에 대한 징계 시효는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된다. 동시에 피해자는 비위 혐의자에 대한 징계 처리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규정해 공직사회 내 피해자 보호 체계를 강화했다.
이번 개정안은 입법예고와 부처 협의를 거쳐 12월 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회 통과 후 6개월이 지나면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다. 개정안 전문은 관보와 국민참여입법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