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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방대법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권한에 부정적 기류 확산

미국 연방대법원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건물. ©Nicole Alcindor/ Christian Post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단행한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5일(현지시간) 열린 구두변론에서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관세의 법적 정당성에 회의적 입장을 드러냈으며, 찬성 입장을 명확히 밝힌 대법관은 단 한 명뿐이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이번 분위기로 볼 때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IEEPA 기반 관세 부과를 지지할 가능성은 낮다”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법관들이 대통령 권한의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헌법적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대통령 권한 남용 우려… 보수·진보 모두 비판적

이날 구두변론에서 진보·보수 진영의 대법관 다수가 IEEPA가 관세 부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 중 한 명을 포함해 최소 4명이 정부 측 논리에 비판적이었고, 2명은 신중하지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나머지 2명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판결의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일하게 정부 입장을 지지한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조차 일부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의회의 명시적 승인 없이 관세가 폭넓게 부과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중대질문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언급했다. 그는 “행정부의 중대한 정책은 명확한 법적 근거 위에서만 가능하다”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학생대출 탕감과 기후변화 정책을 무효화한 판례를 상기시켰다.

◈트럼프 임명 대법관들도 회의적 반응

트럼프가 임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은 이날 변론에서 가장 강경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사우어 법무차관을 상대로 “관세는 세금이며, 세금 부과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회가 전쟁선포권 같은 핵심 권한을 행정부에 간단히 위임할 수 없다”며 헌법상 권력 분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역시 IEEPA의 해석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IEEPA가 수입 규제를 허용하지만, 관세 부과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며 “일부 국가에 대한 제한적 관세는 가능하더라도, 전면적 관세 부과가 비상사태 대응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 ‘관세는 의회 고유 권한’ 강조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관세는 세금의 일종이며, 의회의 고유 권한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바이든 행정부의 비상권한 사용을 제한했던 대법원의 과거 결정을 언급하며, “같은 원칙이 트럼프 정부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IEEPA를 근거로 한 트럼프의 관세는 거의 모든 상황을 비상사태로 규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결국 우리는 항상 비상사태에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 발언은 법정 안팎에서 웃음을 자아냈지만,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남용을 비판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도 “IEEPA는 이전 법률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해석이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신중한 캐버노·토머스, 우호적 알리토

보수 진영의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대통령이 외국의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폭넓은 재량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트럼프 측에 다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적대적인 외국과의 무역 의존도를 조정하고 전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트럼프 이전 어떤 대통령도 IEEPA를 관세 부과에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대통령의 위기 대응 수단을 제한하는 데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중대질문원칙과 권한불위임(non-delegation) 원칙을 언급하며, 양측의 법리적 입장을 폭넓게 청취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로서는 대법관 9명 중 6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어, 최종 판결이 정부에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WSJ는 “보수 성향 대법관들마저 관세의 법적 근거를 문제 삼으면서, 행정부의 경제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