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로새서 강해의 주요 맥락과 의의
장재형목사를 키워드로 하여, 먼저 골로새서 강해라는 흐름 안에서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정수와 교회의 본질, 그리고 그 교회를 바라보는 목회적 통찰을 폭넓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때 장재형목사가 늘 강조하는 복음의 핵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성경적 토대에 대한 이해를 함께 엮어 정리함으로써, 복음 진리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면모가 오늘날 교회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고찰해볼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절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소개한다. 편지를 시작할 때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복음의 권위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밝힌다. 장재형목사 역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이들에게 '정체성'의 중요성을 수없이 설파해왔다. 교회 안팎의 여러 사역자나 성도들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는가" 하는 질문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졌다는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동시에 이 편지를 함께 쓰고 있는 협력자로 디모데를 언급한다. "형제 디모데는"이라는 표현은, 복음 사역이 결코 개인 영웅주의가 아니라 협력과 연합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당시 골로새라는 작은 도시의 교회에 보낸 편지였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몸인 전체 교회가 어떻게 협동하고 서로 지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이다. 장재형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연합'과 '동역'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의 도전과 거짓된 가르침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는 비결이라고 설명해왔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 사이의 우정을 넘어, 성령 안에서 서로 보완하고 세워 주는 관계를 말한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에바브라라는 동역자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고, 바울이 멀리 로마에 있을 때 이 교회 소식이 전달되었다. 편지 서두에서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라고 호칭하는 것은, 이들이 복음 안에서 바르게 서 있고, 또한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신실함이 있음을 시사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를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신실함'과 '복음의 순수성'을 들곤 한다. 특히 복음 안에 선 사람들은 다른 어떤 문화적·사상적 흐름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도 중심을 지켜낼 힘이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지난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혼합주의적 위협들을 이겨낸 근간이라고 역설한다.
바울의 감사와 기도의 내용(1:3~1:8)은 당시 초대교회가 얼마나 기도에 힘쓰고, 믿음과 사랑, 그리고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붙들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라는 표현은, 교회 공동체가 매일같이 실천해야 할 신앙의 삼박자와 같다. 믿음·사랑·소망의 삼박자는 교회 성도의 핵심적인 기둥이자 성경 전체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장재형목사 역시 주일마다, 혹은 주중 예배와 각종 모임에서 늘 강조하는 부분은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도 간의 참된 교제 안에 있는 '사랑'과 '선교적 소명'이다. 골로새서가 말하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교회가 성경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골로새 교회가 그 무렵 직면했던 문제 중 하나는, 복음의 순수성에 이질적인 사상들이 섞여 들어오려 했다는 점이다. 헬레니즘 철학과 유대적 율법주의, 신비주의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침투해 교회를 혼란케 했는데, 바울은 "우리가 들은 복음 진리는 이미 너희에게 열매를 맺고 있다.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고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복음의 보편성과 능력을 재확인한다. 이것은 교회가 그저 한 지역 문화나 특정 사상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편만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말씀이야말로 현대 교회가 갖춰야 할 '세계관적 시야'를 열어 준다고 말한다. 지역 교회나 개인의 사역이 매우 제한적이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온 천하에 열매를 맺는 복음'의 일부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사역의 동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 서신의 특성, 곧 인사와 감사, 그리고 기도에 이어 곧바로 이어지는 교리적 가르침(특히 1장 9절~23절)은 골로새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위로부터" 설명하는 '높은 기독론(Christology from Above)'을 펼친다. 왜냐하면 예수를 단순히 훌륭한 교사나 예언자로 격하하려는 이단적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를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셨던 창조주 하나님으로 제시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분임을 선포함으로써 복음의 중심을 재천명한다. 장재형목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만약 예수를 '그저 인간적 메시아' 정도로만 바라보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왜곡되기 시작하고, 구원의 절대성 또한 위축된다는 논지다.
특히 골로새서 1장 15절 이하에 등장하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만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피조물의 범주를 넘어 창조주의 지위에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가 닥쳤던 영지주의나 율법주의적 왜곡에 맞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고백하도록 하기 위한 선포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을 해석할 때, 단순히 교리적 지식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예배와 봉사, 그리고 선교의 모든 활동에서 '교회의 머리이자 궁극적 주권자'이신 예수를 실제로 높여 드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예를 들어, 교회의 의사 결정이나 재정 운용, 그리고 선교 전략 수립 시에도 인간적 계산이나 이익이 아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방향에 순종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골로새서가 담고 있는 핵심 교리와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초대교회가 얼마나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구체적으로 살아 내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장재형목사는 골로새서뿐 아니라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로마서 등 바울 서신 전체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 안에서 자유와 사랑을 누리는 교회 공동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서조차 단순히 율법적 요구나 도덕적 규범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포된 구원과 해방, 그리고 성령께서 이루시는 새 생명의 열매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바울은 골로새서 1장 후반부에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와 사역의 목적을 재차 밝힌다. 이는 복음이 주는 능력과 교회를 섬기는 방향을 더욱 선명히 하기 위함이다. 거짓 교사들이 그 권위를 흔들고자 할 때, 바울은 "나는 고난받는 사도로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 몸된 교회를 위한 사역에 기쁨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를 설립하거나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바로 이러한 바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난'이란 단어가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니며, 오히려 성도가 복음에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맞닥뜨리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교회가 곧 세상의 환난과 갈등, 그리고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바울의 서신들은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나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참된 복음'을 지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중요한 지침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골로새서 본문(특히 1장)을 통하여 복음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높이 선포하는 바울의 메시지는 결코 한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바울 서신의 보편적 가치를 거듭 강조하면서, 교회가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반드시 붙들어야 할 대원칙들을 정리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신 창조주이며,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구원주이시다. 둘째, 복음을 듣는 데에서 멈추지 말고 깨달아야 하며, 깨달음에서 멈추지 말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셋째, 교회는 세상의 문화나 철학보다 훨씬 더 크고 보편적인 복음의 비전 안에서 자신을 정립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이러한 원리들을 가르칠 때, 바울이 말한 "하늘에 쌓아 둔 소망"(골 1:5)을 실제로 붙드는 삶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는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확신과, 그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의 기쁨을 의미한다. 교회가 재정적 안정이나 외형적 성공만을 바랄 때, 그저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소망을 이미 '하늘'에 쌓아 두었다고 말한다. 삶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소망에 고정될 때, 교회의 목표와 방향도 달라진다.
복음과 교리를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며, 고난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서 이 땅 위에 '작은 천국'을 실현해 가야 한다. 바울의 골로새서가 보여주는 교회상은 공동체 안에서뿐 아니라, 온 천하를 향해 복음의 열매가 확산되고 전파되는 모습이다. 장재형목사는 교회를 세울 때마다 이 점을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교회는 결코 자기만의 웅크린 쉼터가 아니라, 복음을 가진 '전진 기지'가 되어야 한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교리와 믿음이 공고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확실히 선포될 때, 자연스럽게 교회는 선교와 봉사의 방향으로 뻗어 나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나아가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거짓 교사들'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복음에 물타기를 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피조물 중 하나로 격하하려고 시도했다. 때로는 율법주의를 재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리는가 하면, 때로는 세속 철학과의 혼합주의를 시도했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도전들이 교회 내부와 외부에서 제기됨을 지적한다. 교회가 세상적 성공이나 인기, 물질적 축복만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기울어질 때, 어느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속죄의 은혜가 희미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또는 정반대로, 율법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복음의 포용력과 확장성을 가둬버리는 교회들도 나타난다. 이런 극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보여 준 '온전한 복음' 이해가 필수적이다.
결국 골로새서 강해의 중심축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신다는 선언,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온전히 서야 한다는 가르침, 그리고 성도들이 날마다 깨달은 복음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독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세기 초대교회뿐 아니라, 21세기 오늘날의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장재형목사는 말씀을 전할 때마다, 교회 역사를 뒤돌아보면 복음이 희미해질 때마다 끊임없는 혼란과 세속화, 분열이 일어났음을 지적하면서, 그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 주려 한다. 그 해답은 다름 아닌 '복음의 핵심을 다시 붙드는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높이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골로새서 강해는 단순한 성경 해설이 아니라, 복음의 심장부를 다시 확인하고, 교회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며, 성도가 진실로 믿고 살아갈 신앙의 길을 점검하는 작업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작업이 개인이나 소수 리더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동참해야만 참된 부흥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골로새서가 제시하는 교리적·목회적 통찰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의 권면을 우리의 시대적 언어로 새롭게 해석해, 지역 교회와 세계 교회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1. 교회 공동체와 장재형목사의 목회적 비전
이제 골로새서 강해가 지닌 의의를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동시에 이를 강조해온 장재형목사의 목회적 비전을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보자. 장재형목사는 교회를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 보고, 바울서신-특히 골로새서처럼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정체성을 정교하게 설파하는 텍스트-에서 교회 운영 및 목회 방향의 근본적 토대를 찾는다.
첫째로, 장재형목사는 '말씀의 토대'가 흔들리면 교회 전체가 표류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단순히 주일 설교 때 낭독되는 본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매일 붙드는 영적 기둥이다.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이 전해준 복음의 체계를 따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이 선포하며, 그분이 교회의 머리이심을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교리적 기반이 확실하지 않으면, 교회 내에서 행정, 재정, 교육, 봉사, 전도, 선교 등 다양한 활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는 교회가 어떤 활동을 해도 궁극적으로는 세상적 가치관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복음 진리의 핵심을 붙들 때, 자연스럽게 '사랑과 기도, 그리고 선교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바울이 골로새서 1장 3절 이하에서 "너희의 믿음과 사랑,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언급했듯이, 교회가 성도들 간의 사랑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는 "기도 없이는 교회 안에 생기는 갈등도, 외부에서 오는 공격도 돌파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힘, 곧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골로새 교회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긴밀히 소통하고, 사랑의 소식을 전달했던 것처럼, 현대 교회 또한 미디어와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 훨씬 더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서로를 섬기는 소식을 교환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영적 네트워크"라고 부르며, 한 지역의 교회가 겪는 어려움과 기쁨을 다른 지역 교회도 함께 나누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셋째, '고난 속의 기쁨'이라는 바울의 사역적 태도를, 장재형목사는 교회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귀중한 모범이라 제시한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의 기쁨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골 1:3)고 하였다. 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면, 외부의 핍박이나 내부 갈등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복음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동력으로 삼아 교회를 섬겼을 때, 거기서 부흥과 갱신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것은, 고난에 빠졌을 때 이를 '하나님의 징계'로만 해석하거나 '인간적 실패'로만 보지 말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기쁨"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고난을 미화하거나 적극적으로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고난이 찾아왔을 때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기회로 삼고, 복음에 더욱 붙드는 영적 근육이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넷째, 장재형목사는 골로새서 1장 6절에 등장하는 '열매 맺음'을 교회 공동체의 핵심 지표로 본다. 바울은 복음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란다"고 했다. 즉, 복음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문화권에 갇혀 있지 않다. 교회가 복음을 온전히 붙들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과 세상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고, 그 결과 영혼의 구원과 삶의 변화라는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현장에서 교회 개척과 선교 사역을 지속적으로 펼치면서, 이 '열매 맺음'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동력인지 수없이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복음이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이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도 교회 내부가 서로 분쟁하고 교리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으면, 열매는커녕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장재형목사가 바라보는 목회적 비전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골로새서가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과 '복음의 능력'을 교회 전체가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 기도와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열매가 맺힌다고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말씀을 연구하고, 성도들을 제자훈련으로 세우고, 지역 사회와 세계를 향해 선교적 열정을 불태우도록 독려하는 일이다.
장재형목사는 여러 나라를 오가며 교회와 교단을 섬기는 가운데, 교회가 처한 상황이 나라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를지라도, 복음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골로새서 1장 6절에서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했던 보편적 복음의 힘이다. 교회가 이 힘을 실제로 경험하려면, 내부적으로는 교리를 견고히 하고, 외부적으로는 사랑과 봉사를 통해 세상에 다가가야 한다. 바울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과 정보가 발달한 현대에,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동시에 세속 문화, 물질주의, 철학적 상대주의 등의 도전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런 복잡다단한 시대에,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골로새서가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교회'라는 원형을 붙들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처럼 교회가 '말씀'과 '성령'에 기초해 세워질 때, 비로소 교회 내부의 다양한 사역-예배, 찬양, 교육, 선교, 구제, 봉사, 행정 등-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고백이 실제로 공동체의 의사 결정과 생활 양식을 지배하게 될 때, 교회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부터 재정 운용, 그리고 세상을 향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는 인간적 계산이나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 확장과 복음 증거라는 우선순위를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다.
이에 덧붙여, 바울은 골로새서 후반부에서(특히 2장~3장) 교회가 피해야 할 혼합주의나 이단적 주장을 비판하고, 성도가 실천해야 할 거룩한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장재형목사는 "참된 복음 이해가 없는 곳에는 반드시 율법주의와 율법 폐기가 공존하며, 혼합주의가 만연해진다"는 점을 경고한다. 교회가 교리적 토대 없이 '열심'만 앞설 경우, 쉽게 극단적인 길로 치달을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은혜만을 부르짖으면서 죄의 문제나 거룩함을 등한시하면, 교회는 순간적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영적 생명력을 잃게 된다. 바울이 골로새서 전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절대성을 거듭 강조한 것은, 이런 위험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교회를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설립이나 리더십 양성 과정에서, 신학 교육과 실제적 목회 훈련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것을 두 날개로 비유한다. 한 날개는 철저한 말씀 교육과 신학적 정립(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보인 교리적 명확성), 다른 한 날개는 실제 교회 사역 현장에서의 사랑과 선교(골로새서가 말하는 열매 맺음과 확장)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교회는 제자리나 삐뚤어진 방향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요인들-예를 들어 세대 차이, 문화 차이, 재정 문제, 교회 정치 구조에 대한 이견 등-은 언제나 복음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때 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갈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갈등 해결 방안에 있어서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보여준 영적 통찰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적 관심"을 핵심 열쇠로 제시한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 그 문제를 당사자끼리만 두고 보지 말고,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기도하며, 복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나아가 골로새 교회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했다"(1:8)는 본문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성도들의 선한 소식과 사랑의 실천이 널리 공유될 때, 교회는 혼란 대신 오히려 감사와 기쁨의 소리가 넘치게 된다. 이 점에서도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서로에 대한 은혜로운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고 자주 언급한다. 은혜의 소식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고, 헌신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장재형목사가 목회를 통해 실천해온 방식 중 하나는, 교회의 모든 양육 과정에서 '성경적 사고방식'을 체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공부와 설교, 제자훈련, 소그룹 모임, 봉사훈련, 선교훈련 등 교회 생활 전반에서 끊임없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 답은 결국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골로새서가 말하는 '복음에 대한 깨달음'(1:6)은 교회가 모든 사역의 동기를 살피는 기준점이 된다. 만일 교회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많은 사람을 모으는 데 그치거나, 단순히 교회 규모 확장이나 재정적 이익을 추구하는 결과가 된다면, 그 순간부터 교회는 '복음에 대한 깨달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골로새서 1장이 보여주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구체적 적용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1:3)라고 했다. 기도는 단순히 개인 신앙생활의 영역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함께하는 '영적 유대'이며, 복음의 능력을 실제 삶으로 옮기는 통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기도가 끊이지 않도록 세밀하게 제도화하기를 권장한다. 예를 들어, 주일 공예배는 물론, 주중 기도 모임, 소그룹 간 기도 네트워크, 금식 기도 모임, 세계 선교를 위한 중보 기도팀 등 교회 구조 전반에 기도를 심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교회가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실제로 붙들게 하고,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나 박해, 혼합주의적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 준다. 골로새서의 저자인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너희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던 것은,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중단 없이 이행하도록 독려하는 모범이었다. 장재형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서로를 세우며, 떨어져 있어도 기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고취한다. 이는 곧 바울이 골로새 교회와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여 복음 안에서 하나 되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회복해야 할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 골로새서 본문은 '성령'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길게 다루지는 않지만, 바울 서신 전반에 걸친 맥락을 보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열매 맺는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뤄진다. 특히 1:8에서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라는 대목은, 사랑의 실천이 성령 안에서 이뤄짐을 분명히 말해준다. 장재형목사는 사랑의 실천이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이나 정의감 정도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여러 사례를 들어 가르친다.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희생과 용서를 실천해 보일 때, 세상은 그 배후에 작동하는 비인간적(超인간적) 힘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힘은 곧 성령의 능력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결국 교회 공동체는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야 할 존재다. 신앙의 성숙은 교회가 한편으로는 예배와 말씀 교육, 교리적 정립을 통해 깊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기도로 하나 되어 세상에 선교적 사명을 펼쳐나갈 때 완성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안과 밖의 균형'이라고 한다. 안으로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밖으로는 복음을 흘려보내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바로 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만물의 으뜸이시며,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하신 주권자라는 고백은, 교회의 활동 전반을 단순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로 격상시킨다. 교회가 이 고백을 놓치지 않는 한, 설령 바깥환경이나 시대적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도, 복음이 가진 본연의 능력은 계속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골로새서 강해나 기타 바울 서신 강해, 그리고 사도행전 등 초대교회 기록을 통해, 오늘날 교회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왔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말씀을 단순히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서가 권면하듯이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교회가 영적인 깊이를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이웃 사랑과 봉사, 전도와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장재형목사가 바라보는 교회상은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섬기고 바꾸는' 공동체다. 이 교회상은 골로새서가 말하는 바울의 이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거짓 가르침과 혼합주의로 분열될 위기에 놓여있던 골로새 교회가, 바울의 편지와 권면을 통해 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주께 돌아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굳게 서서 열매를 맺은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끝으로, 장재형목사는 지속적으로 "교회는 복음의 수호자요, 복음의 전달자"라고 강조한다. 골로새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드높이면서 시작하는 까닭은, 교회가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 이단적 사상이나 세속적 유혹에 노출되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교회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골 1:5)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소망을 기억하고, 성령을 힘입어 서로 사랑하며 기도할 때, '열매 맺는 복음'은 결코 멈추지 않고 확장된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장재형목사는 바울 서신, 특히 골로새서가 보여주는 목회적 지혜와 영적 통찰을 시대적 언어로 재해석하여, 여러 교회와 성도를 격려하고 이끌어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가 세워지며, 사랑과 기도로 열매를 맺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모습은 1세기 초대교회부터 21세기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요청되는 사명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골로새서를 오늘 우리의 교회가 읽고 배우며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자, 장재형목사가 줄곧 설파해온 핵심 메시지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강해는 단순히 과거 역사 속의 문서를 살펴보는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를 돌아보고, 복음의 뿌리를 얼마나 깊이 내리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확인하는 결정적인 이정표가 된다. 바울의 논리적·체계적 가르침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 사역,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거룩한 소명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붙들어야 할 모든 요소가 빼곡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에 대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으며, 이 복음 이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고 종종 역설한다. 오직 복음이 참된 힘이 되며, 그 복음이 머리 되신 주님께 진심으로 순종할 때 교회는 세상 어느 조직도 흉내낼 수 없는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골로새서를 통해 드러나는 바울의 핵심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세울 수 있는 확실한 토대다. 장재형목사가 일관되게 제시해온 목회적 비전 역시 여기에 근거해 있다. 복음의 절대성,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교리적 안정성, 사랑과 기도로 결속된 공동체, 그리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교적 열정 등이 골로새서를 통해 자세히 드러나고, 이는 현대 교회가 마땅히 본받을 삶의 양식이다.
바울이 감옥이라는 '환경적 제약'을 넘어 교회를 격려하고 복음을 확장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처한 코로나 시대 혹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경제적 난관, 세속화 등 다양한 '시대적 제약'을 극복하는 길도 동일하다.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 예수를 높이는 것, 교회가 한 몸으로 기도하는 것. 장재형목사는 이 길을 계속해서 제시하면서,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들뿐 아니라 전 세계 교단과 교회들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결국 골로새서의 첫 장에 담긴 말씀과 바울의 기도를 통해, 교회가 어떻게 복음의 순수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지켜 나갈 수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선명함은 그대로 오늘날의 교회, 그리고 장재형목사가 꿈꾸는 '진정한 복음 공동체'의 상(像)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세워진 새로운 피조물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는 복음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으며, 나아가 온 천하에 그 열매를 확장해 가는 사명을 맡고 있다. 여기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와 사역자는, 바울의 시대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동일하게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이상으로, 골로새서 강해의 주요 맥락과 의의를 정리하고 그 안에서 장재형목사의 목회적 비전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이 땅에서 복음의 진리로 살아가고자 할 때, 늘 상기해야 할 것은 한 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복음이 교회의 모든 활동과 삶의 동기가 되며, 성령 안에서 서로 기도하고 사랑함으로써 열매 맺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선포한 메시지이자, 장재형목사가 꾸준히 한국과 세계 교회에 제시해 온 핵심 방향성이다.